대기를 떠도는 정령(精靈)들- 不動 의 여행 (Voyage immobile) 울퉁불퉁한 거친 암벽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 같기도 하며, 수생식물의 앙금이 떠다니는 수면 위에 비추어진 형상같기도하며, 낡고 오래된 먼지 쌓인 거울에 희미하게 반사된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물의 모호한 형상들을 연상시키는 곽수영의 회화는 공기, 따스함, 어렴풋함, 기억, 침묵, 고요, 평정, 자유와 같은 형이상학적이며 비물질적인 느낌, 대기적이며 동시에 대지적인 물질의 분위기 를 떠올리게 한다. 화가의 무의식 속 기억의 어딘가에 각인된 스쳐 지나간 시간들은 대기와 물질, 빛과 어두움, 가벼움과 무거움의 만 남이 만들어낸 화면 속에서 그 강렬함이 더욱 극대화 된다. 물질적 화면에 잠시 머무는 대기의 정령들(그림자적 형상들)은 무언가의 부재를 덮어버린, 그러나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물감의 층들을 가로지르며 에테르적 비존재를 꿈꾸는 여행을 시작한다. 작가의 노마드적인 삶을 반영하는 작품의 제목들; <여행>, <여행자>, <부동의 여행>은 구속 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예술가의 보편적인 진정한 갈망을 이야기한다. 프랑스 평론가 Francoise Monnin은 곽수영 회화의 제목 <여행>(Voyage)을 음성학적 유사성에 서 Voir-age : le regard et la memoire로 해석한다. <본다는 것>과 <기억하는 것>, '시간을 본다'는 것은 화가가 세계를 만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며 여러 다양한 시각예술 매체/장치들의 메커니즘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역설적인 의미를 함축한 <부동의 여행 >은 관객을 미지의 시간으로, 모호한 이동으로 이끄는데, 마치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에 사로잡혀 꿈쩍하지 못하는 그런 '순간의 부동 (不動)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부동(不動)의 여행은 부동(不同)의 여행 즉 언제나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여행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부동의 여행은 화폭에 담긴 일상의 평범한 소재가 보여주는 것처럼 외부의 현실세계와 유리되어 있지 않은, 세계로 열려있는 언제나 새로운 차원의 시간으로의 여행, 바슐라르가 예찬한 진정한 시적인 순간, 수직적 시간으로의 여행을 의미한다. 생성의 선-선율 획 회화에 있어서 주된 조형요소는 점, 선, 면(덩어리)이라 할 수 있다. 회화의 공간은 사실 그것들의 조합일 뿐인데, 칸딘스키에 의하면 선은 움직이는 점의 산물, 즉 움직임에서 생성된 점의 흔적이다. 곽의 회화는 이러한 '점'의 연장으로써의 선이 아닌 들뢰즈적 생성의 선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화의 획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일률적이고 변화 없는 일직선적인 연필의 선이 아닌 동양 전통 음악의 길게 끌어주는 선율의 진행처럼 다양 한 떨림과 불규칙적 진동을 유발하는 변화의 농담과 밀도의 선율적인 서화의 획에서 그의 조형언어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서예 의 붓이 기운생동의 리듬 있는 호흡에 의해 움직이듯이 음의 떨림과 동요는 생동감 있는 생명력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작가 곽수영 의 선율적 획들은 이러한 동양 선율의 멜로디의 진행처럼 생성된다. 그의 조형언어와 조형방법들은, 무엇보다 음과 양이 이루어낸 동 양의 서화에 바탕을 둔 정신적인 선묘적 회화라는 점에서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 쇠라의 점묘화법 (분 할주의)등의 서양회화에서 탐구되었던 조형어법들과 구분되어 조명된다. 서예의 습득과정이 그렇듯이 곽의 생성의 선(획) 긋기 작업, 끝없는 되어가기(devenir)의 선 생성 과정은, 시각기억보다 운동기억력 에 근거한 반복에 의한 제스처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적인 되어가기 선 생성작업은 존재와 그것의 부존 사이를 떠도는, 그 층을 가 로지르는 필연적인 우연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은 동(動)적인 동시에 정(靜)적이다. 모든 것은 움직이지만 결국 원래의 상태로 되돌 아가는 도교의 정중동(靜中動)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곽수영의, 무언가의 실존과 부존만을 증거할 뿐인 지우기와 다시 드러내기의 선 생성은 공허한 우주적 제스처, 정 과 동의 영원한 순환인 것이다. 존재와 부존의 형상 선들은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서로의 기억 속으로 끝없이 사라진다. 고요한 대지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보다 방향성 없는 물결의 파장에 비추인 그림자가 더욱 스산하며 공허하듯, 곽수영의 <부동의 여 행>의 존재와 부존의 형상들은 엉클어진 선의 덩어리 속에서 더욱 치열하게 덧없이 사라진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욕망의 실체는, 그림자처럼 다가서면 멀어지고 이내 사라지는 운명적인 기억의 이면, 망각 속으로 잊혀진다. ■박은영 평론 中